치킨과 축구
내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월드컵 장면은 경기장에서의 순간이 아니다. 그 기억은 용산의 한 주택가 건물 1층, 작고 평범한 치킨집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 특히 서울에서 사람들은 남들에게 조심스러운 편이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식당에서도 옆 테이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경우도 드물다. 평소라면 그럴 이유도 없다. 그것이 서울의 방식이고, 우리는 이런 문화에 적응한 채 살아간다.
때는 2022년 겨울이었다. 나는 친구와 크리스피 치킨에 시원한 생맥주를 시켜 놓고 한국과 포르투갈의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고 있었다. 이런 특별한 밤의 메뉴는 고민할 것도 없이 치맥 아니겠는가.
가게 안은 어둑하고 조금 어수선했다. 배달 기사가 수시로 문을 드나들었고, 아이들은 양념 묻은 손으로 유튜브가 틀어져 있는 부모의 휴대폰을 붙든 채 가게 안을 돌아다녔다. 테이블마다 손님들은 치맥과 함께 잡담하면서 가게 한 쪽의 벽에 걸린 TV를 힐끔거렸다. 모두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저녁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관심은 월드컵에 가 있었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려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후반전 양 팀의 치열한 경기 속 스코어는 1-1.
그때, 손흥민이 달리기 시작했다.
경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맞은 역습 찬스였다. 가게 안 공기가 점점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순식간에 가게 전체가 조용해졌다.
손흥민의 찔러주는 패스가 황희찬에게 연결됐다.
후반 46분, 황희찬의 슈팅. 공이 골문 구석으로 완벽하게 들어가며 역전골이 터졌다.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함성과 함께 같은 테이블 사람을 끌어안았고, 곧바로 옆 테이블로 손을 뻗었다. 나와 친구도 서로 소리를 지르다가, 근처 테이블에 있던 또래 남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가 마치 십년지기 친구처럼 하이파이브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따로 있다. 바로 당시 가게에 있었던 배달 기사다. 치킨과 맥주가 담긴 배달 봉지를 한 손에 들고, 휴대폰을 보며 문 쪽으로 걸어가던 그. 주문이 몰리는 월드컵 밤에는 1분 1초가 다 돈인 사람이다. 그런데 골이 들어가고 가게가 뒤집어지자, 그는 잠시 멈춰 섰다. 문 옆 작은 선반 위에 봉투를 내려놓고는, 몇 초 동안 우리와 함께 환호했다.
그는 다시 봉지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곧 오토바이 시동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치킨이 있었고, 잔에는 아직 맥주가 남아 있었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우리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사라져 있었다. 각자의 거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서울이 그날 밤에는 잠시 달라져 있었다.


